
도리스 레싱의 1988년 소설 '다섯째 아이'는 대가족의 꿈을 향한 부부의 집착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상적인 가족상을 향한 맹목적 추구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이기심,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과정을 차갑게 서술합니다.
다섯째 아이 가족붕괴의 시작
데이비드와 해리엇 부부는 대가족을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계속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가 부유한 아내와 재혼해 막대한 융자금과 양육비를 지원해주고, 해리엇의 어머니 도로시와 여동생들인 사라, 안젤라가 빵을 굽고 잼을 직접 만드는 등 가사와 육아를 도운 덕분에 처음에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심지어 사라와 윌리엄 부부의 불화, 다운증후군 딸을 낳은 일에 내심 상대적 우월감까지 느낍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주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무리해서 2주 간의 홀리데이 파티를 여는 이들 부부는 번번이 만삭을 핑계로 샴페인 속에서 축하만 받고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조리와 뒷정리는 어머니와 자매, 초대객들에게 미룹니다. 데이비드는 재혼한 아버지가 무리한 덕분에 사립학교를 나와 고액연봉자가 되었음에도 아버지 면전에서 사립학교는 나오나 안 나오나 큰 차이가 없다고 자신의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보낼 것이라며 성의 없이 구는 태도를 보입니다. 너무 빨리, 많이 아이를 낳는다고 충고하는 주변 의견을 무시하며 네 아이를 낳아 각자의 방을 주던 그들의 평화는 최소 8명은 낳겠다는 의견으로 다섯째 벤을 낳자마자 완전히 깨어집니다. 벤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 반려동물과 동복형까지 공격하며 작중 내내 원시인의 후손이라 묘사될 정도로 괴상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들을 부러워하던 이들도 발길을 끊고 부모들조차 손을 떼며 부부는 경제적으로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모성강박
부부는 크게 다툰 끝에 벤을 시설로 보내지만, 구속복을 입고 동물과 다름없이 다루는 참혹한 환경을 본 해리엇이 다시 데려오며 부부 사이도 갈라집니다. 벤의 눈치를 보며 방에 갇혀 불행을 겪던 아이들도 해리엇에게 마음을 닫습니다. 급기야 아들 루크는 부유한 친할아버지 부부의 스페인으로, 헬렌은 옥스퍼드의 할머니 몰리에게, 제인은 도로시를 따라가 다운증후군 에이미를 돌보며 각자의 행복을 찾아갑니다. 데이비드는 생계를 위해 일에 몰두하고 벤의 폭력으로 비뚤어진 넷째 폴은 해리엇의 관심에 집착하며 신경질적으로 자랍니다. 해리엇의 모성강박은 점점 위선적 태도로 변합니다. 벤이 감당되지 않은 해리엇은 용돈을 주며 동네 바이크족 부랑아들에게 벤을 데려가 놀게 하고 이들이 마을에서 말썽을 부려도 이들이 집에 먹을 것을 사갖고와 놀다 간 난장판을 치우는 정도의 수고만 감당하며 전보다 편해졌으니 됐다는 위선적 태도를 보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폭행과 강간, 절도가 벌어져도 자신에게는 점잖게 군다는 이유로 모른 척 부랑아들을 대하고 이들이 정신 차리고 취직해 떠나자 벤과 놀아 줄 이들이 없음을 아쉬워합니다. 과부가 되어 이젠 쉬고 싶은 어머니를 불러 가사를 시키고 벤의 습격으로 어머니가 다치게 되었음에도 어머니가 도움을 거부하자 어떻게 애를 시설에 보내느냐며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벤을 감금되어 죽게 두지 않았고 엄마이기에 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해리엇은 결과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고 가정의 파괴자가 된 자신을 희생양이라 생각합니다.
이기적 양육이 만든 파국의 결말
더이상 파티를 열 수 없게 되자, 이들이 더이상 재혼가정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주목받거나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벤의 존재로 인해 뒷담과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에 내심 불만을 갖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데이비드가 대책을 제의해도 해리엇은 오히려 건강한 여섯째 아이를 가져보려 하며, 그럴수록 파국과 고단한 삶이 강조될 뿐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이 부부에게 수표를 써 줘야 하던 제임스는 도움을 끊고 오직 아이만 데려와 양육과 학비를 돕겠다고만 못 박습니다. 학대와 과보호, 방임 사이에서 자란 벤이 가까스로 중학교에 가기는 했지만 괴력에 비해 감성을 기르지 못했습니다. 너무 잘난 척해 벌 받았다는 해리엇의 사고방식에 데이비드는 우연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들의 꿈인 빅토리아식 대저택을 팔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팔고 이사갈 처지가 됩니다. 바이크 갱단에 들어간 벤에게 의례적 태도로 주소를 써 주나 벤은 그녀 몰래 종이를 바닥에 버리며 깨어진 그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마침내 집을 떠나 부부만 남겨지자 해리엇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며 전 세계의 범죄 뉴스가 들릴 것으로 예상할 뿐 마치 제 3자처럼 덤덤한 태도로 관망합니다. 이와 같이 이기적 양육은 모성이 끝내 책임이 아니라 관람의 태도로 변질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해리엇은 파괴의 원인을 세계로 전가하며, 자신이 만든 비극에서 스스로를 분리한다. 벤은 떠났지만, 끝내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습니다.
이 작품은 아이의 공포를 빌려 부모의 욕망과 위선을 파헤칩니다. 벤은 악의 근원이기보다, 이상적인 대가족과 모성에 집착한 해리엇과 그에 동조한 데이비드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레싱은 벤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책임을 건네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방임과 과보호, 자기기만이 가족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차갑고 빠른 서술로 보여줍니다.
[출처]
나무위키 - 다섯째 아이: https://namu.wiki/w/%EB%8B%A4%EC%84%AF%EC%A7%B8%20%EC%95%84%EC%9D%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