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한 가족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문체적 특징과 서술전략이 작품의 정서·주제·역사 인식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본 글에서는 작품의 문체적 성향, 서술 구조, 그리고 정지아 특유의 서사 전략을 분석하여 작품이 전달하는 감정의 결·이념·기억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탐색한다.
서술 구조의 특징과 문체적 흐름 분석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주목할 점은 서사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기억의 조각을 엮어내는 구성이라는 점이다. 이 구성은 단순한 과거 회고형이 아니라, 화자가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 자체를 읽는 사람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문체는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가 장면 사이의 여백을 스스로 채우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절제된 문장은 전쟁·이념·아버지의 삶 같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독자가 감정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만든다. 작품의 서술 구조는 짧은 단락과 단정한 문장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기록문학 혹은 증언문학이 갖는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일지’라는 제목처럼 기록·서술·회상이 교차하는 형식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증언의 문체”라는 성격을 강화한다. 또한 화자의 내적 독백과 외부 상황이 무리 없이 하나의 문단에 자연스럽게 배치되는 점은 정지아 특유의 담백한 문체가 가진 힘이다. 장면 전환도 과감하게 이루어지지만, 인물과 사건의 연결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는 혼란 없이 서사의 큰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이처럼 구조적 짜임과 문체적 절제가 결합되면서, 작품은 한 가정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의 감정적 풍경을 기록하는 형태로 확장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 역사와 만나는 지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서술 전략: 시점, 기억의 재구성, 거리두기
정지아는 1인칭 화자의 시점을 통해 아버지라는 인물과 그 시대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화자 본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 전략은 ‘기억을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태도’를 형성하며, 독자가 아버지의 삶을 직접 바라보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특히 회상형 서술을 선택하면서도, 장면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극화하지 않는 점은 서술 전략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화자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행동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바라보며 의미를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문체는 단호한 진술, 간결한 묘사, 감정적 간극을 드러내는 거리두기 전략을 사용한다. 이는 독자가 아버지의 내면을 감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인물의 배경과 시대적 문맥 속에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사건을 직선적 시간 흐름이 아니라 ‘기억의 재배열’ 방식으로 제시하여, 독자는 화자와 함께 퍼즐을 맞추듯 서사의 의미를 탐색한다. 이러한 전략은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감정적 뿌리를 갖는지 천천히 드러나도록 만드는 문학적 장치를 형성한다. 이처럼 시점·거리두기·기억 관리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작품은 개인의 감정 서사가 아닌 ‘역사 속 한 인간의 초상’을 구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은 독자가 아버지의 삶을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시대적 현실의 총합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이야기의 깊이를 한층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체가 형성하는 감정선: 담백함 속의 울림
이 작품의 문체는 화려함이나 장식적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건조할 만큼 절제된 언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술 태도, 단정하고 정확한 문장이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담백함은 아버지의 삶을 과장 없는 시선으로 담아내어 독자가 스스로 감정의 세기를 조절하도록 돕는다. 특히 아버지와 화자의 관계, 전쟁과 이념의 상처, 빈곤과 분노 같은 주제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독자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으며, 오히려 무심한 듯 서술함으로써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문체의 또 다른 특징은 ‘간접적 감정 전달’이다. 아버지의 행동이나 말투를 과장 없이 제시하고, 사건에 대한 직접적 논평을 배제함으로써, 감정은 장면의 맥락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는 문학적 기술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간결한 문장은 독자가 장면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문체가 드러내는 감정선은 부모 세대의 고단함, 시대가 남긴 흔적, 후대가 이해해야만 하는 역사적 책임과 연결되며,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문체적 절제는 인물의 감정이 말보다 침묵 속에서 더 깊게 전달되도록 만들며, 독자로 하여금 서사의 여백을 스스로 해석하게 한다. 결국 작품은 담백함 속에서 더욱 강렬한 정서적 파동을 만들어 내며, 아버지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절제·기록·거리 두기라는 문체적 특성과 기억의 재구성 전략을 결합하여, 한 인간과 시대의 상처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문체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강한 정서적 깊이를 형성하며, 독자는 서사를 따라가며 아버지의 지난 삶을 천천히 이해하게 된다. 이 분석을 통해 작품을 다시 읽을 때 구조와 문체가 어떤 방식으로 감정과 의미를 형성하는지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