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때문에 모든 걸 걸었는데, 그 사랑마저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떨까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단순히 불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500페이지가 넘는 이 방대한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안나가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씁쓸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삶에서 시작된 균열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 러시아 상류층 여성입니다. 고위 관료인 남편 카레닌이 있고, 아들 세료자도 있으며,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미인이죠. 겉으로 보면 부러울 게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명예와 체면만 중시하는 무정한 사람이었고, 안나는 그 결혼 생활 속에서 점점 메말라갔습니다. 그러던 중 오빠 스티바의 불륜 문제를 해결해주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젊고 매력적인 군인 브론스키를 만납니다. 둘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불륜 관계에 빠져듭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건, 당시 러시아 사교계에서 불륜은 사실 흔한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불륜 자체가 아니라, 그걸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데 있었습니다. 안나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결정적 계기는 승마 경기에서 벌어졌습니다. 브론스키가 낙마 사고를 당하자 안나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감정을 드러낸 거죠. 이 순간부터 사교계는 안나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읽으면서, 저는 당시 사회의 이중성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몰래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그걸 공개적으로 드러낸 안나만 비난했으니까요.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산욕열로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남편 카레닌은 처음엔 이혼을 요구했지만, 죽어가는 안나를 보며 마음을 바꿔 용서하려 합니다. 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이를 거부하고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여기까지는 사랑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안나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친구들도 잃고, 무엇보다 자신이 남겨둔 아들 세료자를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나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브론스키뿐이었죠.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안나의 사랑이 점점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브론스키가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의심하고,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질투에 사로잡힙니다. 저도 관계에서 불안할 때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어서, 안나의 심리가 너무 실감났습니다. 모든 걸 잃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의지하게 되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신을 떠날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다가, 기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당신은 후회할 거예요"였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저는 한동안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사랑의 형태, 레빈과 키티
안나 카레니나가 흥미로운 건, 안나와 브론스키의 비극적 사랑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전개되는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레빈은 시골의 지주이자 지식인으로, 귀족 영애 키티를 사랑합니다. 처음엔 키티가 브론스키에게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거절당하지만,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빠지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레빈은 다시 용기를 내 키티에게 청혼하고, 둘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립니다. 제가 레빈의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건, 그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고민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신앙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아갑니다. 저도 20대 후반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레빈의 고민이 그때의 저와 너무 비슷해서 몇 문장은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안나와 레빈을 대비시키며, 감정에만 충실한 사랑과 성찰을 통해 찾아가는 행복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단순히 어느 쪽이 옳다는 식의 도덕적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행복에 도달하는 경로는 다양하고, 어떤 선택은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죠.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위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계속 화가 났던 건, 당시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였습니다. 사교계 사람들은 몰래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안나만 손가락질했습니다. 심지어 안나의 남편 카레닌도 아내의 불륜에 충격받은 게 아니라, "이게 알려지면 내 명예가 어떻게 되나"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안나의 오빠 스티바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고, 사교계에서도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 왜냐면 그는 남자니까요. 하지만 안나는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이게 19세기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성과 남성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는 다르니까요.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겉으로는 도덕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권력과 체면만 중시하는 상류층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러시아 농업, 철학, 종교, 사회 문제를 두루 다루면서, 당시 사회의 모순을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단순한 고전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제 삶의 선택들, 특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진짜 제 마음을 외면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안나는 사랑을 선택했지만 결과를 감당하지 못했고, 레빈은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평화를 찾았습니다. 둘 중 누가 옳다기보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행복이란 게 결국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가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이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5%88%EB%82%98%20%EC%B9%B4%EB%A0%88%EB%8B%88%EB%8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