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농촌의 암담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기영의 장편소설 『고향』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농촌 소설을 넘어, 식민지 수탈과 계급 갈등 속에서도 연대와 각성의 가능성을 제시한 프로문학의 대표작입니다. 오늘은 민촌 이기영의 생애와 문학 세계, 그리고 『고향』이 지닌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겠습니다.
프로문학 활동
이기영은 1895년 5월 29일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20세에 무과에 급제한 아버지 이민형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1906년 모친이 사망했고, 1909년 14세에 4살 위인 조병기와 결혼하였습니다. 호는 민촌(民村)입니다. 천안 상리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건너가 동경 세이소쿠 영어학교를 중퇴하였고, 1924년 《개벽》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의 문학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에 가담한 것입니다. 이후 카프 1차 검거 때 입건되었으며, 제2차 카프 맹원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전주 형무소에 1년이 넘도록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1935년 조선프로예맹의 강제 해체는 그의 문학 세계에 새로운 고비를 가져왔습니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카프의 해산으로 말미암아 계급문학운동의 조직적인 실천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194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 건설을 주도하며 월북했고, 해방 후 북한문단에 닥친 대규모 숙청바람 속에서 월북 작가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1972년에는 조선문학예술총연맹 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기영은 계몽기, 일제강점기, 해방 그리고 분단이라는 20세기 한반도 역사적 파란을 겪으며 1984년 8월 9일 90세로 작고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과 궤를 같이하며, 프로문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증언한 작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평생을 청상으로 살다 간 부인 조병기 씨와의 관계는 소설 『고향』 속 희준과 아내의 관계로도 투영되어 있어, 작가의 삶과 작품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기영 문학의 4기 변천과 리얼리즘 성과
이기영의 문학 활동은 크게 4기로 나뉩니다. 1기는 1924~26년에 발표한 초기 작품들로서 주인공이 대부분 영웅적으로 그려져 있고 계급사상에 입각한 계몽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전적 소설 『가난한 사람들』(개벽, 1925. 5)을 비롯해 『농부 정도룡』 등의 농민소설과 『쥐 이야기』외 『교원과 전도 부인등』의 풍자소설이 이에 속합니다. 2기는 1927~34년에 발표한 작품들로 계급의식이 없던 인물이 각성해가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생산현장에 뛰어든 진보적 지식인에 의해 제지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는 『종이 뜨는 사람들』과 빈농 출신의 노동자가 귀향해서 고향 농민들에게 계급의식을 일깨우는 『홍수』외에도 『박승호』『서화』등이 이에 속합니다. 또한 한국 근대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고향』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습니다. 3기는 1935~45년에 발표한 작품들로서 KAPF 검거사건으로 투옥되어 감옥에서 구상해낸 장편 『인간수업』을 비롯해 『신개지』『봄』등이 이에 속합니다. 4기는 월북 후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들로서 이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땅』『두만강』입니다. 『땅』은 1946년에 실시된 북한의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처음에는 '개간편'·'수확편'의 2부작으로 꾸몄으나 뒤에 이를 1부로 하고 이어서 2·3부를 썼습니다. 『두만강』은 7년간에 걸쳐 완성된 3부작으로서 대한제국 말기부터 50년간의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입니다.
| 시기 | 연도 | 주요 특징 | 대표작 |
|---|---|---|---|
| 1기 | 1924-26년 | 계급사상 계몽주의 | 가난한 사람들, 농부 정도룡 |
| 2기 | 1927-34년 | 계급의식 각성 과정 | 고향, 종이 뜨는 사람들 |
| 3기 | 1935-45년 | 투옥 후 창작 | 인간수업, 신개지 |
| 4기 | 월북 이후 | 북한 배경 대하소설 | 땅, 두만강 |
이기영의 문학은 시기별로 뚜렷한 특징을 보이며 발전했지만, 일관되게 민중의 삶과 현실을 직시하는 리얼리즘 정신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프로문학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관념성과 도식성을 극복함으로써, 단순한 이념 선전이 아닌 생생한 현실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습니다.
농민 장편소설로서의 의의
이기영의 『고향』은 조선일보 1933년 11월 15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252회 연재한 장편소설입니다. 김기진(金基鎭)의 회고에 의하면 연재 마지막 35회, 36회분은 작가의 구속으로 김기진 자신이 대신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삼천리문학》(1938.1)에 실린 『현대조선장편소설전집』 광고에 '이기영의 『고향』은 현대조선문학의 세계적 수준을 능가하는 작품'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작품은 동경에서 법과를 마친 김희준이 5년 만에 고향인 원터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마을에는 철도가 놓이고 제사공장이 들어섰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합니다. 자작농이었던 원칠이는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덕삼과 춘식이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유학까지 다녀온 희준의 행색이 초라한 것에 실망하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공부를 하러 떠났던 오륙 년 전보다도 더 황폐해진 고향에서 농민들을 깨우치고 살 것을 다짐합니다. 희준을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과 갈등을 빚습니다. 승학은 지주의 지적도를 변적하는 수법으로 이전 마름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앉은 교활한 인물입니다. 자식의 교육까지도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시키고 있는 그는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삽니다. 여자고보에 다니는 승학의 큰딸 갑숙이 요양 차 고향에 내려와 옛 소꿉동무인 희준을 만나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이 이미 읍내 상인 권상필의 아들 경호에게 몸을 허락한 것과 희준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마을에는 풍년이 드나 소작농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에 수재가 나 집들이 무너지고 농민들은 가난에 허덕입니다. 희준을 중심으로 농민들은 승학에게 소작료 감면을 요구하나 거절당합니다. 공장에서 갑숙을 중심으로 노동쟁의가 벌어지자 희준은 그녀를 돕습니다. 희준의 행동에 감명받은 갑숙은 부친에 반대하여 이들과 힘을 합쳐 투쟁합니다. 희준이 승학을 찾아가 상필에게 비열한 행동을 한 것을 들먹이자 승학은 마지못해 소작농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희준과 갑숙은 함께 기뻐하며 깊은 동지애를 느낍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의 착취와 그로 인한 농촌의 황폐화, 몰락한 농민의 노동자로의 각성,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는 점입니다. 봉건 사회의 잔재를 지닌 채 식민지 자본주의에 침식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서사 구성이 치밀하며 농촌의 실상이 비교적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경향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관념성과 도식성을 극복함으로써 프로문학의 최대 성과로 평가됩니다. 작품 속 '고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빼앗기고 흔들리는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하며,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곧 삶의 뿌리를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다가옵니다.
고향 재조명과 현대적 의의
1989년 서울에서 이기영의 『고향』이 도서출판 풀빛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이기영의 생애나 작품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파편적이고 낯설게끔 되어 버렸던 이유는 그의 월북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단행되고 『고향』이 출판되면서 이기영은 다소나마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설가로서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이기영의 생애를 도도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향』 책머리 '유족의 말'에서 이기영의 손자 이성렬 씨는 평생을 청상으로 살다 가신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한숨뿐이셨다고 합니다. 『고향』에서 희준은 늘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구박을 했는데 소설 속 희준은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며 이런 이기영 조병기 부부 손자의 회고입니다. 2006년 이기영 평전을 처음 출간한 이성렬 씨는 할아버지의 문학이 다시 조명 받게 된 것과 개정증보판을 발행하게 된 것에 대해 뿌듯해했습니다. 특히 민촌 사업을 적극 추진해 온 천안역사문화연구회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평전 개정증보판 저작권을 연구회에 위임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되는 『고향』『땅』을 비롯하여 남북에 방대한 소설 작품을 남긴 민촌 이기영을 기리는 '민촌 이기영 선생 35주기 추모식'과 '2019 민촌 이기영 「고향」문화제'가 2019년 9월 7일 천안 시민들의 관심 속에 열렸습니다. 충남 천안 동남구 유량동 천안살림교회에서 열린 문화제에는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촌 이기영 '고향' 문화제 조직위원회'와 150여 명에 이르는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행사가 열린 것인데 작품 고향에 나오는 천안 옛 지명을 찾아 답사코스로 잇는 민촌 고향길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재조명 작업은 단순히 과거 작가를 기리는 것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고향』은 화려한 기교보다 시대의 아픔을 정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다소 이념적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당시 현실이 절박했다는 증거처럼 보여 오히려 진정성 있게 읽힙니다. 작품이 보여주는 구조적 억압에 대한 저항과 공동체적 연대의 가능성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한 화두입니다. 이기영의 『고향』은 일제강점기 농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 문학적 성과입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현실로서의 계급 갈등을 묵직하게 그려내면서도, 절망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적 연대와 각성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에는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어, 당시 민중 문학의 성격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재조명되는 이기영의 문학은 분단과 이념을 넘어 한국 근대문학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이기영의 『고향』은 왜 프로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나요? A. 『고향』은 프로문학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관념성과 도식성을 극복하고, 일제강점기 농촌의 현실을 고도의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서사 구성이 치밀하며, 단순한 이념 선전이 아닌 생생한 현실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습니다. Q. 이기영은 월북 작가인데 왜 한국에서 재조명되고 있나요? A.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단행되면서 이기영의 작품도 다시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문학은 이념을 떠나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천안 등 지역에서는 민촌 이기영 문화제를 개최하며 그의 문학을 기리고 있습니다. Q. 『고향』에서 '원터 마을'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요? A. 네, 『고향』의 배경인 원터 마을은 충청남도 천안에 실제로 있던 마을입니다. 작품에는 천안의 옛 지명들이 등장하며, 현재 천안에서는 작품 고향에 나오는 천안 옛지명을 찾아 답사코스로 잇는 민촌 고향길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이기영 자신도 천안 출신으로, 작품 속 공간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지역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www.munhakwan.com/file_view.html?uid=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