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단순한 철학서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소설 형식을 빌려 도덕의 근원을 해체하고,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도발적인 텍스트입니다. 니체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를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의 모든 절대적 가치를 의문에 부치며, 독자에게 "자기 자신이 돼라"는 가혹한 과제를 던집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버멘쉬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선언한 위버멘쉬(Übermensch) 개념은 흔히 '초인'으로 번역되지만, 그 본질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 자체를 의미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10년간의 고독 끝에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에게 위버멘쉬를 설파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차라투스트라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 '인간말종(letzter Mensch)'이 되겠다며 환호합니다. 줄타기 곡예사의 죽음은 이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곡예사는 위험을 업으로 삼아 자신의 길을 가려했지만, 광대(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엘리트)에게 방해받아 추락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죽은 곡예사를 존중하며 직접 묻어주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곡예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려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위버멘쉬의 핵심이 성공 여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려는 용기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니체에게 위버멘쉬란 타인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내적 태양(주된 의지, 본능, 열정)을 따르는 존재입니다. 이는 기존의 도덕과 신앙, 사회적 규범에 순종하는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만난 숲 속의 성자는 여전히 신을 믿으며 동정과 적선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선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신이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동정이 아닌 넘쳐흐르는 자기 긍정의 힘으로 타인에게 선물을 주려 합니다. 이처럼 위버멘쉬는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강한 자기 긍정에서 비롯된 창조적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영원회귀 사상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은 니체 철학에서 가장 심오하면서도 가혹한 개념입니다. 이는 모든 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사상으로, 단순한 시간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철학입니다. 작품 속에서 '문(門)'은 영원회귀를 상징하는 핵심 이미지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문 앞에서 과거와 미래가 만나며, 모든 순간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영원회귀 사상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수용이 아닙니다. 니체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도 좋을 만큼 긍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현재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긍정을 요구합니다. '둥근 고리'로 상징되는 영원회귀는 직선적 시간관을 거부하고,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삶'을 여자에 비유하며 속삭이는 장면에서 영원회귀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삶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서 순종과 지배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니체는 이러한 순환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낮과 밤'의 순환이 상징하듯, 건강한 창조의 시기와 병든 고통의 시기는 필연적으로 교차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순환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되,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amor fati)'입니다.
파괴와 창조
니체 철학의 핵심은 기존 가치의 파괴와 새로운 가치의 창조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통찰입니다. 작품 속에서 제시되는 '낙타-사자-아이'의 세 단계 변화는 이러한 과정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낙타는 "~해야 한다"는 타인의 명령에 순종하며 무거운 짐을 지는 존재입니다. 사자는 이러한 명령과 싸워 자유를 쟁취하는 파괴자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창조를 위해서는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이자 신성한 긍정입니다. '가장 추악한 자'는 창조적 파괴의 실패 사례를 보여줍니다. 그는 동정 받는 것에 대한 수치심으로 신을 죽이지만, 허무에 빠져 곧 새로운 신을 섬기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니체가 강조하는 것은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넘쳐흐르는 힘에서 비롯된 창조입니다. '썩은 열매'는 창조의 결과물마저 공허해지는 허무주의를 상징하는데, 니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이뤄낸 성과물조차 비판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독수리와 뱀의 상징은 이러한 창조 과정에 필요한 두 요소를 보여줍니다. 독수리는 긍지를, 뱀은 영리함을 의미합니다. '독수리와 함께 있는 뱀', 즉 긍지를 가진 영리함만이 자기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독수리 없는 뱀', 즉 긍지 없는 지식은 허무로 빠지게 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뱀의 대가리를 깨무는 결단을 내리고 웃음소리를 내는 장면은, 무거운 진지함(난쟁이로 상징되는 '중력의 정신')을 거부하고 명랑함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니체에게 창조란 무거운 책임이 아니라 놀이하는 아이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이후의 삶을 더 가혹하게 요구합니다. 이 작품이 '만인을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인 이유는, 스스로 사유하고 창조할 용기를 가진 자만이 이 텍스트를 자기 삶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독자에게 안락한 답을 주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 극복의 과정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https://namu.wiki/w/%EC%B0%A8%EB%9D%BC%ED%88%AC%EC%8A%A4%ED%8A%B8%EB%9D%BC%EB%8A%94%20%EC%9D%B4%EB%A0%87%EA%B2%8C%20%EB%A7%90%ED%96%88%EB%8B%A4